16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

제13대 대통령선거 실시, 노태우 후보 당선 - 공정선거 감시단 소속 대학생 등 100여 명, 부재자투표함 밀반출을 적발하여 구로구청사 봉쇄하고 농성(구로구청농성 사건)

헌법이 개정되기 오래 전부터 제13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6월 10일에 이미 노태우로 결정된 상태였다. 그는 ‘6․29선언’으로 지명도를 더욱 높였으며,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며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했다.

반면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후보 단일화를 두고 갈등했다. 군부는 오랜 기간 집권하여 기반을 구축한 반면, 야당은 다소 자유로운 활동을 한지 얼마 안 되어 기반이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분열하고 끝내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대통령 후보들은 세를 과시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했고, 아무렇지 않게 지역주의를 활용하여 사회적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투표를 하루 앞둔 12월 15일에는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사건’의 폭파범으로 지목된 마유미(한국명 김현희)가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학생과 시민은 학업과 생계를 밀쳐두고, 공정선거운동을 전개하여 16년 만에 이루어진 시민에 의한 대통령 직접선거가 부정과 모략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감시했다. 공정선거 감시 활동이 공권력과 가장 첨예하게 충돌했던 곳은 구로구청이었다. 공권력은 12월 16일부터 2박 3일 동안 전개된 ‘부정선거 항의 농성’을 강제 해산시키면서 1,050명을 연행하고 105명을 구속시켰다. 이 과정에서 하반신 마비 등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것처럼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6월민주항쟁의 성과가 모래성처럼 와해되었던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집권은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위축되고, 지연되는 것을 의미했다.